화이트, 3그랄
"정말 좋아하는게 맞는걸까?"
0그랄 | 1그랄 | 2그랄 | 화이트_3그랄 | 4그랄 |
21.05.30 | 21.09.28 | 22.04.01 | 23.04.02 | 23.09.10 |
21.09.27 | 22.03.31 | 23.04.01 | 23.09.09 |
1. 1년만의 승급
정확히 1년만에 그랄을 하나 더 달았다. 합동훈련 겸 승급식이라 사람들이 꽤 많았다. 체육관 규모가 커지면서 여러 지점관원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스파링 후 그랄을 주던 전과 달리 심사 없이 바로 승급식부터 진행되었다. 받으면서도 이게 맞나 조금 알딸딸했고, 늘어난 그랄에 비해 내 실력은 한창 부족한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받았으면 됬지. 어쨋든 다시 돌아왔단 것 만으로 뿌듯했다. 봄날 개나리꽃 마냥 활짝 웃고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신나서 친구들이랑 배터지게 갈비를 한 턱 냈던 기억이 난다. 다음 번엔 더 잘하면 되지. 네 번째 그랄을 받을 때는 내 자신에게 더 떳떳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2. 권태기
뭐든 3년차가 되면 권태기가 온다는 썰이 있다. 직장인은 퇴직을 고려하고, 연인들은 헤어짐을 고려하는. 내겐 3그랄 때가 딱 그랬다. 딴에는 꾸준히 나갔는데 여전히 알 듯 말 듯 어려웠다. 몸 이곳 저곳이 아픈 곳은 늘어가는데, 실력은 늘지 않아서 답답했다.
삼그랄인데 수업은 여전히 어려웠다. 버벅대느라 진도를 못 따라가면, 파트너들도 수업을 놓치곤 해서 미안했다. 관원들 사이에서도 혼자 겉도는 기분이라 적응을 못한 것 같아 주눅들었다. 친구나 직장에 비해 체육관 사람들은 늘 어려웠다. 수업이 기다려지고 설레던 날들은 오래였다.
꼭 다시 체육관으로 돌아오겠다고 이를 악물던 사람은 이제 사라진 듯 했다. 나는 정말 주짓수를 왜 좋아할까? 몸도 아프고 잘하지도 못하는데 왜? 애초에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운동을 할 수 있는 건 맞을까?
때마침 손가락 통증이 재발했다. 못 참을 정도는 아니였는데, 이 걸 핑계삼아 잠쉬 체육관을 쉬었다. 잘하지 못해도 속상하지 않은, 가벼운 즐길거리들을 원했다. 실력에 대한 비교도 승패에 대한 부담도 없이 자유롭게 자연을 즐겼고, 함께 산 타는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부담없고 재밌었다. 그래도 뭔가 모르게 화목한 남의 집에 있는 것처럼 마음 한 켠이 어색하고 무거웠다.
선수 생활을 했던 친구에게 물었다. 수업 못 따라가는 애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는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다치기만 하고, 그럭저럭 나오는데. 수업 못 따라가서 방해되는 거 아닐까 걱정된다고 했더니 그럼 그냥 하지말라고 했다. 뭘 그렇게 걱정고민을 많이 하면서 운동하냐고. 그냥 취미 아니냐고.
얘기하다보니 깨달았다. 맞아. 이건 내게 고작 취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너무 좋아서 잘하고싶은데 못하는 나를 인정할 수 없음을, 그래서 차라리 외면하고 놓고 싶었던 마음이였던 거다. 다시 체육관으로 갔다. 여전히 못해서 버벅이고 짜증났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놓지말자. 언젠간 되겠지.
3. 첫 시합 준비
승급식 2주 전, 시합이 함께 열린다고 했다. 늘 맘에 품고 있던 꿈. 한번은 대회에 나가보고 싶었는데, 내 실력도 체중도 자신이 없어서 미뤘다. 관장님께 조심스레 참석 가능여부를 물었더니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남은 기간은 얼마 안되지만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무릎 상태가 악화됬다. 회사도 조퇴할 정도로 통증이 계속되서 일상생활은 물론 운동도 당연히 쉬어야 했다.
3일 정도 쉬었는데 맘이 초조했다. 주변에서도 이번은 쉬고 다음에 하자고 만류했지만, 나는 너무 하고 싶었다. 그리고 뭐, 생각해보면 늘 이런식이였다. 언제는 뭐 최상의 상태였나. 무릎이나 어떤 상황이나, 항상 내 발목을 잡는 건 있었다. 그래도 나는 하고 싶으면 했다. 걱정하고 고민하고 난리쳐도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걸로 밀고 가는 답정너. 결정도 후회도 다 내 몫인걸. 가보자.
일주일은 순탄치 않은 준비 과정이었다. 스파링 위주의 수업을 계속 듣는다는 건 정말 생각보다 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클로즈가드 연습을 계속 하다보니 왼쪽 발등과 오른쪽 발가락이 아팠다. 다음 날은 팔꿈치와 어깨. 손가락에서 손등까지. 초크때문에 눈두덩이 실핏줄이 터져 인상이 퀭했다. 삭신이 아팠다.
같이 연습하던 파트너가 다친 적도 있었다. 다 내 탓인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안좋았다. 사범님께 같은 자세를 여러 번 지적받았다. 발전 없이 부상만 안겨주는 나, 초조함이 몸과 마음을 지치게했다. 오늘은 쉴까 고민하다가도 오늘만 나가자. 하루만 더 버티자는 마음으로 보냈다.
시합 하루 전, 운동 중에 꺾인 발가락 때문에 병원에 갔다. 어차피 부상의 경중여부와 상관없이 시합에 나갈거라 치료를 미뤘는데, 통증이 계속 사라지지 않아 처방약이 필요했다. 별 거 아닐거라 생각했는데 의사선생님이 신경손상이라서, 어쩌면 지금처럼 걸을 때마다 찌릿거리는 후유증이 평생 남을 수 있다고 하셨다.
치료실에서 혼자 조용히 울었다. 진료 때문에 전날 연습도 빠졌는데, 이제 하다하다 신경손상이라니 왜 나는... 끊임없는 비난과 자기의심속에 빠졌다. 점점 더 자신이 없어졌다. 수 만가지 안 좋은 상상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 잡으려고 노력했다. 잘하냐 못하냐가 아닌 몸 컨디션과 담대함이 중요하다는 관장님 말씀이 떠올랐다. 체력도 부족하지만 마인드 컨트롤은 제대로 해서 반은 먹고 가자고 다짐했다.
집에 와서 그동안 정리해뒀던 운동 일기를 다시 봤다. 여전히 다는 못알아들었지만, 전보다는 꽤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다. 시험 전 날 공부가 더 잘되는 것 처럼, 기술 영상들도 더 이해가 쏙쏙 잘됬다. 그래도 꽤 성장했네. 그래. 쫄지말자. 기죽지말자. 그렇게 나를 달랬다.
- 내이름은 주짓쑤_4그랄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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