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그랄
"뭐든 처음이란 잊을 수 없는 법이지."
⬛️⬛️ ⬛️ | ||||
0그랄 | 화이트 _1그랄 | 2그랄 | 3그랄 | 4그랄 |
21.05.30 | 21.09.28 | 22.04.01 | 23.04.02 | 23.09.10 |
21.09.27 | 22.03.31 | 23.04.01 | 23.09.09 |
1. 첫 그랄, 내게도 무언가 생겼다.
첫 승급날. 같은 시기에 운동을 시작한 연과 미의 승급선물을 준비했다. 뭐든 인생에서 첫 경험은 오래 남는 법이니까. 남들에겐 별거 아닌 일 그랄일지 모르지만, 이제 막 시작한 사람들에겐 이 작은 띠 하나란 별 게 아닐 수 없을 테니까. 작게나마 축하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함께 검은띠까지 열심히 하자고 말했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곁에 없지만.
중학생이었던 민도 축하해 주었다. 편의점으로 데려가더니 자기가 쏜다며 먹고 싶은 걸 골라보라고 했다. 애기한테 얻어먹다니 이래도 되는 건가 머뭇거리자, 오늘 같은 날은 꼭 축하받아야 한다며 지구젤리랑 이것저것 집어 계산대에 올리던 기억이 난다.
민은 이번 승급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나보다 고작 한 달 늦게 들어왔을 뿐인데. 그래도 그 애는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 주고 부러워했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자기도 열심히 해서 빨리 승급할 거라고 말하면서.
새로 감긴 그랄은 가로등 빛을 받아 완장처럼 반짝였다. 이젠 더 이상 그냥 흔한 흰 띠가 아니었다. 뿌듯했다. 기성품과는 명확히 구분되는 내 띠. 이글이글 열정에 불이 붙었다.
2. 첫 부상, 눈물 나는 두 달 휴식
좀 더 운동에 집중하고 싶어서 십 년 간 고수하던 긴 머리를 짧게 잘랐다. 긴 머리는 예쁘지만 운동할 때는 정말 쓸모없다. 아무리 세게 묶어도 스파링 중에는 산발이 되곤 했고, 종종 상대에게 밟히기도 해서 여간 불편했었다.
이틀 후쯤, 왼쪽 무릎을 다쳤다. 상대가 가드를 푸느라 내 허벅지를 세게 밀어찼다. 순간 무릎에서 뚝한 파열음이 났다. 당시엔 조금 아프지만 괜찮다고 생각하고 수업을 다시 재개했다.
그날 밤.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왼쪽 무릎이 콕콕 쑤셨다. 갑자리 그렇게 좋게 보던 파트너가 원망스러워졌다. 수술경력이 있던 왼쪽 무릎이라 잘못됐을까 봐 겁이 났다. 병원에 가보니 이미 뼈가 닳을 정도로 퇴행성 관절염이 많이 진행됐다고, 운동을 그만두는 게 어떻냐고 권유했다. 그 질병은 나랑 굉장히 먼 이야기 같았는데,충격적이었다.
퇴행성 관절염이라니. 힘겹게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다니는 할머니들이 생각났다...조금 절망적이고 무서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짧아진 머리. 외출복보다 운동복이 더 많은 옷장. 소매나 목깃만 보면 잡아보고 싶은 충동. 유튜브만 봐도 가득한 기술 영상 북마크와 추천이 가득했다.
진단결과를 부정하고 싶어서 자주 가던 한의원으로 갔다. 바램과 달리 한의원에서도 일단 무조건 두 달은 운동을 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실망스러웠다. 하루 이틀 못 간것도 답답한데 두 달이라니. 장난감을 뺏긴 어린애처럼 어안이 벙벙하고 눈물이 송골송골 맺혀 흘렀다. 한의사 선생님은 장기적으로 봐야 하지 않겠냐며 나를 달랬다.
그때는 약간 맹목적으로 수업에 집착 했던 것 같다. 한창 흥미를 붙인 상태라 성장에 목말랐다. 매일 운동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할 수 없다고 하자 답답하고 슬펐다. 헬창들이 하루라도 쉬면 근손실을 걱정하는 것처럼, 휴식이라는 게 정체를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초조했다.
그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단은 멈추기로 결정했다. 모두가 말리고 달래는 모습을 보며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앞으로를 위해 잠깐 쉬자. 그동안 배웠던 거 복습하면서 보내면 큰 문제없을 거야. 며칠은 굉장히 짜증나고 힘들었지만 곧 나름 적응해 갔다. 동굴 밖으로 나가기를 바라던 곰의 마음으로 두 달을 보내고 나서야 체육관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3. 코로나 시대의 운동
다시 시작한 운동을 시작하자마 또 다른 방해꾼을 만났다. 바로 그 유명한 코로나였다. 22년 3월 일 평균 코로나 확진자 수는 약 36만 명으로, 전 달에 비해 5배나 넘게 상승했다. 주변에서 감염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체육관도 예외는 없었다. 마스크를 벗지 않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보니 결코 완벽할 수는 없었나 보다.
감염자가 증가할수록 갑자기 결석하는 친구들도 늘었다. 확진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비난받던 분위기라 다들 쉬쉬했지만 누구나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서 시합에 출전하지 못하는 사람도 생겼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일이기에 선수도 관장님도 아쉬움이 커 보였다. 혹시 나도 피해를 줄까 봐 대화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주변에서 의심증상이 보인다는 말에 고민하다가 운동을 쉬었다.
가족 중에 양성이 나와서 다시 체육관 가는 걸 며칠 미뤘다. 슬슬 나가보려고 했더니 또 내가 확진자가 되었고, 자가격리를 시작해야 했다. 어마무시한 그 이름 코로나. 시대에 한 획 긋던 그 강력한 존재는 결코 호락호락하게 주짓수를 허락하지 않았다.
ㅡ 내 이름은 주짓쑤 : 화이트 벨트_2그랄에서 계속ㅡ
'운동 > 주짓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짓수] 내이름은 주짓쑤 : 당신이 궁금한 주짓수 이야기 4가지 (2) | 2023.10.06 |
---|---|
[주짓수] 내이름은 주짓쑤 : 화이트 벨트_4그랄 (23.09.10), 첫 시합 (0) | 2023.09.15 |
[주짓수] 내이름은 주짓쑤 : 화이트 벨트_3그랄 (23.04.02~23.09.09) (2) | 2023.09.11 |
[주짓수] 내이름은 주짓쑤 : 화이트 벨트_2그랄 (22.04.01~23.04.01) (2) | 2023.09.04 |
[주짓수] 내이름은 주짓쑤 : 화이트 벨트_0그랄 (21.05.30~21.09.27) (4) | 2023.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