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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3월 세 번째 일기 (03.11~03.17)

by 킹쓔 2024.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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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월_ 왜 구르질 못하니 왜

 
 우체국에 가다가 관장님이랑 마주쳤다. 웬 남자가 쳐다보길래 누군가 했더니 관장님이었다. 아 안경 안 써서 몰라본 건데 괜히 인사도 안 하는 사람처럼 보인 것 같아 죄송했다. 그리고 오늘 정말 피곤해서 쉬고 싶었는데 '이따 보자'라고 하셨다… 네 갑니다 가요…

검지가 검정이 될 정도로 깡깡한 테이핑

 혹시 또 손이 아플까 봐 치덕치덕 테이핑을 하고 갔다. 관장님이 장갑 낀 줄 알았다고 놀라시면서 가벼운 친구랑 붙여주셨다. 하지만 그녀의 기술은 결코 가벼운 무게가 아니다. 날렵하고 공격적인 움직임 앞에서 나는 살짝 수그러들었다.

 확실히 사범님들이 없으니까 체육관이 좀 빈 느낌이다. 뭐 그네들이 버선발로 뛰쳐나와 나를 반겨준 적은 없지만, 늘 정답게 다가와 말을 걸어주고 먼저 안부를 물어봐주던 존재였다. 그래서 정이 참 많이 들었던 것 같고. 묵묵히 응원해 주는 게 큰 힘이 돼서 기술을 성공시켜 본 적도 몇 번 있고.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나는 앞으로 구르지를 못했다. 순간 다칠 것 같다는 생각에 멈칫하게 되더라고. 3년 전, 그때가 떠올랐다. 관장님도 어떻게 못하던 나를 사범님들이 용기를 북돋아줘서 굴렀던 그때. 지금은 그 사람들이 없어서 안 되는 걸까? 아니면 그네들이 없어서 내 자신감 창고가 바닥나 버린 걸까?

 굴러야 할 타이밍에 구르지 못해서, 더 크게 다칠 뻔했다. 부상이 두려워 멈칫하다가 더 큰 부상을 입을 뻔 한 아이러니. 스파링 시간에도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하는 모습을 보며 내게 실망스러워졌다. 언제까지 힘으로 할래.


03.12.화_ 불안을 연습하는 중입니다.

 
 카드 결제일이 다가오자 또 불안해졌다. 먹색 잉크에 서서히 젖어가는 두루마리 휴지처럼 서서히 불안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제는 살짝 놔버린 듯 한 마음도 들고,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냐는 생각도 들지만. 또 나를 고쳐 잡았다. 언제까지고 불안에 가득히 잠식된 삶을 살 수는 없지.
 
 알다시피, 이제 앞으로 더 많은 불안과 우울에 노출된 환경이 올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조금씩 극복하는 연습을 해보자. 감정에 잠식되는 삶이 아니라 컨트롤하는 삶을 살아보자.


03.13.수_ 따뜻함이 몽글몽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몸이 개운하고 가벼웠다. 어깨죽지를 제압 당해 자극이 짜릿하게 올 때면 다칠까 두려워 쪼그라들던 나와 다르게, ㅊ은 기쁜 얼굴로 자극이 온다며 "맞아요 맞아!! 잘하고 계시네요, "를 연발했다. 해사범 님이 생각났다. 늘 따뜻하게 나의 기를 북돋아주던 그녀. 
 
 나는 정말 심리적인 영향이 큰 사람인가 보다. 그 말 몇 번 들었다고 스파링 때는 제법 차분히 게임을 잘 풀어나갔다. 내가 내 자신감을 스스로 충전해 줄 순 없는 걸까? 외부에서 충전기를 꽂으면 날아다니는 제가 바로 MBTI의 E입니다. 


03.14.목_ 욱하는 성질을 죽이는 연습 중입니다.


 '당신의 애정을 값싸게 쓰지 말라'는 글이 떠올랐다. 내 발언 중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상대가 불편함을 느꼈고, 그걸 계기로 상황이 점점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갔다. 나를 좋아하던 상대에게 혹여나 상처를 주었을까 걱정했고,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을  잃을까 걱정됐다. 서로 애정이 있는 관계이니 잘 노력해서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상대방은 내 맘 같지 않았나 보다.
 
 <좋아해 주는 사람을 상처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방의 입장에서만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그 사람의 상한 마음을 달래주려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도 깎아버렸다. 하지만 그런 나와 달리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간격에 허탈함과 서운함이 뻗쳤다. 나만 진심이었나 일이 손에 안 잡혔고, 우울했고 입맛이 없었다. 
 
 그냥 그 사람은 그냥 딱 거기까지였던 거다. 갈등이야 일어날 수 있고 서로 오해할 만한 부분이 여럿 있었지만, 해결과정에서 우리는 달랐다. 상대를 보니 이 관계에 대한 애정도가 나만큼은 아님을 느꼈다. 그게 상처였지만 그만큼 깨달음도 컸다. 그런 상대에게 애정을 쏟기는 어렵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이라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부단히 나를 깎아댔다. 하지만 다시 한번 또 깨달았다.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그 사랑의 값어치가 남들보다 떨어지는 것은 아님을. 예수나 부처 같은 사대성인도 아니고 늘 베풀고 배려하며 살 수는 없지. 애정을 쏟고 아끼는 일은 내가 꼭 필요한 상대에게만 쓰자. 나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나를 아껴주는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들에게.  


03.15.금_ 어른이 되는 건 무던해지는 걸까, 아니면 성질낼 기력이 없는 걸까?

 
 30대 중반이 들어서면서 여러 변화를 맞는 느낌이다. 그중에 하나는 신체적 변화. 노화가 훅 오는 시기라더니 정말 그렇다. 돌도 씹어먹던 위장튼튼이는 사라지고, 소화능력이 떨어져서 걸핏하면 체하기 일쑤다. 비 올 때쯤이면 관절이 얼마나 쑤셨는지, 벌써 지팡이를 들어야 할 기분이다. 

느긋한 성미를 위해 슬로푸드를 만들어봤습니다.


 근데 또 삐걱대는 신체에 비해 마음은 조금 단단해져간다달까? 물론 여전한 성질머리는 후루룩 타오르고 붉으락대지만, 전보단 금세 사그라들고 덜 오르락내리락한다. 뭐 그만큼 성질낼 기력이 달려서 그럴 수도 있고. 


03.16. 토_ 간만에 지방산행, 춘천 삼악산 등산

 
 줄넘기로 친다면 쌩쌩이를 한 네 번은 돌렸을 것 같은 이번 지방산행은 결국 삼악산 한 곳으로 낙찰되었다. 인증에 미쳐 살짝 눈이 돌아가있던 나에게, 물론 마음으로는 산 세네 개도 탈 수 있은 상태여도 하나만 타도 뻗을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웠다. 
 
 늦잠 자버린 사람이 생겨서 일정이 조금 늦어졌다. 아 진짜 미리 일어났나 체크해 보려다 말았는데, 남의 일정이라 안 했거늘. 그냥 할 걸 그랬다.

우리차인척 했던 구형 카니발과 지각자님의 공물

 집결지인 군자에 도착. 카니발 타고 간 데서 왔는데 저 앞에 보이는 구형 카니발. 기웃기웃하면서 가보니 호리호리한 사람이 있길래 그가 맞나 봤으나 아니었다... 저 멀리서 새 차가 왔는데 다행히 우리가 탈 차인 신형 카니발이었다.

생각보다 내부가 좁아 무릎이 쪼금 아플 뻔했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이 거 빌려오라고 했던 차차 생각도 나고, 진짜 빌려서 가려고 알아봤던 오대산 일정들도 생각나고, 우리 애들도 생각나고 뭐 그랬다. 

 꿀 떨어지는 그녀는 첫 만남에 아침, 행동식, 간식까지 아주 가득가득 챙겨 온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뱃속 든든히 산행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도 보고 함백산 이후 석 달 만의 지방산행이라 소풍 가는 것처럼 설렜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 웃음소리가 매력적인 일행도 합류!
 

 등산로에 들어서자마자 압도적인 비주얼로 감탄시키는 삼악산. 이렇게 기대치가 높아져서인지 생각보담은 그냥 그랬다. 내 기준 돌 많고 계곡 있는 연인산 느낌. 내 등력은 대체 언제 오르는 걸까? 가다가 지쳐서 스틱이고 발이고 거의 털레털레 가서 다들 힘주고 가라고 한 마디씩 던지고 갔다. 모르는 아저씨가 사탕까지 주고 가셨다. 고맙습니다 여러분들 아주.

 고마운 사람을 하나 더 추가하자면, 보온병을 몇 개나 들고 온 그도 추가하겠다. 어쩐지 가방 옮겨주는데 30킬로짜리 군장이 따로 없더라고. 날 추울까 봐 오뎅국물 싸왔다는 그... 정말 맛있었다. 다이소에서 판다는 데 갈 때 사가야겠다. 

볼록 튀어나온 배는 애교 포인트라고 우기는 중 / 사슴같은 그녀

 응원해 주시는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드디어 도착한 삼악산 정상. 오 나름 600 넘는 애였네 쩐지. 쉽진 않더라. 그래도 이제 이렇게 다녀와서 무릎 안 아픈 거 보면 등력 조금 는 거 아닐까? 올라갈 땐 공주님이 챙겨주시고 내려갈 땐 다정한 그녀가 기다려줬다. 나 때문에 멀리서 왔다고 인원도 늘려준 그녀... 너가 최고야 흐흐흐.

 

 식사는 춘천맛집 통나무집 닭갈비. 닭내장 먹는단 사람이 없어서 못 먹었다. 흑흑 스승님 생각나고... 대기가 금방 빠져서 번호표에 비해선 금방 들어왔다. 옆테이블은 술 먹고 우리는 적당히 적당히 먹고 카페로 떴다.

 

 까다로운 나도 아주 만족했던 춘천 소나무숲 카페 소울로스터리. 앞에는 소양강천이 뒤에는 섬섬한 소나무들이 운치 있었다. 일몰이 타오를 때면 노을빛 감성이 젖어들도록, 노래는 잔잔한 재즈음악을 틀어주더라. 외부 테라스도 적당히 즐기고 통창뷰도 느끼고 적당히 잔잔바리로 있다 갔다. 

 

 평소에 200걸음 걸을까 말까 하다가 오늘은 2만보를 걸었습니다. 14번째 인증산행이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네요. 이러다 가기 전에 20좌 찍고 가는 거 아냐?라는 행복한 상상. 
 

 몸살통까지 겹쳐서 쓰러져서 죽을 것 같은데 저녁밥 차려달라는 우리집 막둥이. 소금빵 안 사 왔으면 어쨋을 뻔했나.. 빵 먹여서 살살 달래고 누웠다. 생각보다 피곤한 몸에 비해 잠이 잘 안 왔다. 재밌었다 오늘. 


03.17.일_ 으른스러운 하루를 보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어제 저녁부터 배고프다던 생도를 위해-비록 밀키트 지만- 닭갈비도 했다. 수영이가 스프 빼고 준 우동도 드디어 넣어서 먹고. 마치 4인분처럼 보이는 2인분이지만 그럭저럭 둘이서 먹긴 했다. 
 
 크게 가깝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꼭 떠나야 하는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정확히는 왜 꼭 외국에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냐였다. 타국에서 도전해 보고 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보고 싶단 말에 증명보단 정착 할 준비를 해야지, 지금 어린 나이도 아닌데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그런가? 뭐 나도 안 해본 생각은 아닌데, 이렇게 대놓고 말려본 사람은 처음이라 좀 신선했다. 장소가 어디든 살아갈 자신감을 얻으면 그거야 말로 정착의 발판이 아니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 뭐, 각자 경험한 세계가 다르니 가치관도 다르겠지. 감사한 조언으로 여겼다.
 
 몸이 안 좋아 오전 내 누워있다가 집 앞 마트라도 나왔다. 어제 친구 집들이를 갔다 다녀온 리룽씨 얘기를 들으며 으른의 삶은 저런 게 아닌가 싶었다. 그의 말대로 나만 또 꿈과 희망에 도태돼서 살고 있는 건가? 별빛청하를 보며 미룽씨 생각을 했는데, 걘 또 런던 보면서 내 생각했다네. 참나.

속초에서 만난 별빛청하 / 입맛은 으르신인 나

  모르겠다. 어른의 삶이란 뭔지. 사는 건 어른스럽지 못하지만 옛날에는 끔찍이 싫던 찰떡파이가 땡기는 걸 보면 입맛은 으르신이 된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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