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9.월 [ 워홀+0 ]_마침내 출발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 빨래 돌리고, 떠나기 전에 은행 투어 하고. 엄마랑 만나서 밥 먹고, 집도 아주 깨끗히 치워놓고- 아주 바쁘다 바빠.
아빠는 간다니까 방 밖으로 나와보지도 않고 참나- 엄마랑 심지랑 수영이 차 타고 공항으로 갔다. 체크인 수속 중에 누가 언니라고 부르길래 누군가 했는데 김은진이었다.
으유으유 가기 전엔 그렇게 떽떽데더니. 그래도 기몽지가 체크인 줄을 미리 서놔서 그나마 일찍 출국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내가 탄 비행기는 에티하드 항공인데, 총 21시간 정도 걸리는 항공편이었다. 서울에서 아부다비(약 9시간)를 경유(4시간)해 런던으로 (7시간)가는 비행기로, 수하물 양이 넉넉하고 좌석 공간이 여유롭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엄청 붐볐다.
1시에 집에서 출발했고 3시쯤 도착했는데, 체크인하고 나니 4시가 넘어서 거의 바로 탑승동으로 들어갔다. 짐이 너무 많아서 면세점 구경은 못했다. 나름 반십년만에 출국인데 뭐 좀 살걸그랬나, 하하.
비행기 기다리면서 앉아있었는데 옆에 앉아계신 인심 좋은 분들이 과자를 주셨다. 따뜻한 호의에 감사하면서도 바짝 긴장이되서 혹시 위험할까봐 먹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전화 온 친구들한테 연락 몇 번 돌리고 짐 정리좀 하다보니 금세 게이트가 열렸다. 출국 스토리도 못 올렸는데 벌써 줄을 서서 항공기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니. 인스타충에게 간만의 출국 못 올릴정도면 엄청 정신 없었던거 맞습니다.
비행기는 크고 쾌적했다. 특히 내 자리는 바로 옆에 짐을 놓을 수 있어서 좋았다. 메신저 전용이긴 하지만 에티하드 멤버십에 가입하면 와이파이도 무료로 제공되서 만족스러웠다.
타자마자 은지니랑 성임이 편지보고 또 눈물 찔끔하고 김은진 편지는 좀 웃기기도 하고. 무엇보다 배가 고파서 저녘 때가 기다려졌다.
식사는 8시쯤 기름떡볶이랑 더블비안코 같은 게 나왔는데 괜찮았다. 승무원이 치킨이랑 브리스킷이라고 메뉴 안내를 했는데 뒷 말을 못알아들었다.
남들한테 하는 얘기는 아주 또렷히 잘 들리는데 나한테만 말하면 잘 안들렸다. 가방을 좌석 아래로 넣으란 간단한 표현도 못 알아들을 정도였다. 아 긴장하면 잘 안들리는구나, 마음을 편하게 먹고 말해야지. 이제 앞으로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잖아? 다른 언어로 상대방 의사 표현 하는 게 여간 쉽지않고 수고스러운 일이더라도 해봐야 느는거니까, 그러려고 가는거니까. 일부러 음료도 차는 언제쯤 먹냐고 더 물어봤다.
하늘 가까이에서 일한 다는 건 참 멋진 일 같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 할 수 있으니까. 아침에 너무 더워서 샤워를 한 번 더 할까 고민했던 한국과는 완전 딴 판이었다. 하늘 위는 너무 추웠다. 무게를 덜어내고자 청자켓을 가져왔는데 꽤 요긴하게 쓰였다.
미루고 미뤘던 영어 공부를 지금 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 그런가? 영자신문도 보고 한글 자막 지원 안되는 영화도 보고.
만화에 나올 것 같은 구름 구경 좀 하다가, 애들이랑 얘기 좀 하고나니 금방 아부다비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심심할까봐 걱정했는데, 올림픽 양궁도 봐야하고 밀린 일기도 써야하고 사진 정리도 해야하고. 할 일이 아주 많아서 여유로운 비행은 그른 것 같다. 한국을 떠나서도 난 여전히 바쁘다 바빠 한국인인 걸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9시간이 금방 지나, 경유 공항인 자히드 도착. 아부다비는 40도 라는데, 공항 안은 시원했다. 역시 오일머니 국가답게 부내나는 공항이었다. 빅토리아시크릿 옆에 샤워실을 꼭 써보래서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포기하고 왔다. 다 한국사람이었던건 안 비밀.
옆 자리를 여유롭게 쓸 정도로 좌석 선정은 탁월했다. (EY857: 44A / EY11: 68E) 그러나 운 나쁘게도 다른의미로 좌석운은 꽝이었다. 뒤에 아이 두명을 가진 인도부부가 탔는데, 애기가 울면서 계속 좌석을 발로 찼다. 우는거야 어리니까 그렇다치더라도 계속 뒤를 발로 차는데 제지하지 않는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여러 번 주의를 주었지만 차도가 없어 포기했다.
시차를 고려하면 거의 하루를 꼬박새서 가는 셈이었다. 당연히 피곤하고 예민해질 수 밖에 없다는 핑계로 아이에게 너무 가혹하게 군 게 아닌가 곧 미안해지긴 했지만,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아이는 계속 발로 차기를 멈추지 않았다. 뭐 덕분에 한 두시간씩 쪽잠을 자다가 내렸다. 7시간 비행 내내 저렇게 자지도 않고 투정을 부리다니, 애기들은 정말 체력이 좋구나.
에티하드 항공의 단점을 찾자면 기내식이 너무 한정적이라는 거다. 돼지고기도 소고기도 고기만 주구장창 먹는 사람에겐 조금 아쉬울 수도 있는 식단들. 중동국가답게 채식 아니면 닭 밖에 없으니 주구장창 닭만 먹어야 할 수도 있으니 각오하시라. 근데 닭 시키면 야채가 거의 없어서 또 이 점이 아쉽기도 했다. 한국인에겐 고기와 적당한 야채가 필요한데 참...
07.30.화 [워홀+1]_ 런던에서 보내는 첫 날
이제 한국은 자동입국심사 대상이라는 걸 아시렵니까? 흐흐 그래서 아무것도 준비 안하고 갔는데 갑자기 비자 찍으니까 인터뷰 센터로 오래서 당황했잖아. 심사관 언니가 왜 왔냐고 물어서 'for working holidays'라고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잘하구 가란다 캬캬. 빠짝 쫄았는데 도장도 받고 무사 통과.
다들 내가 떠날 때 안 울어서 도착하면 눈물 날거라고 호언장담하더라. 그래 나올 뻔 했다 눈물. 이 짐들을 잘 다 들고 갈 생각에. 왜 이리 가져갈 게 많았나 나는. 디온에게 미리 부탁이라도 할 걸 그랬나. 지하철 짐도 규격 제한 있더라. 순간 쫄았지만 잘 통과했다. 충전해야되는데 현금 어디다 놨다 어버버 할 때쯤 성임이 편지 속 용돈 생각나서 잘 썼다. 내 영국 첫 지출, 오이스터 충전! 고마워요 성이미룽.
기차를 타는데 승강장과 턱 차이가 커서 낑낑대자 길쭉한 흑인 남성이 도와줬다. 되게 어려보이던데 정말 고마워요. 영국사람들 친절하네.
영국 워홀 중 내가 가장 잘한 일이라면 숙소를 여기로 예약한 거다. 위치가 좋아서 킹스크로스, 유스턴, 세인트판크라스 등 기차, 지하철, 유로스타까지 한 번에 탈 수 있다. 게다가 엘레베이터도 있다. 런던 게하 중에는 은근 엘베 없는 곳이 많기때문에 정말 메리트 있는 거다. 시설도 뭐 가격대비 쾌적한 편이고. 전에 워털루에 가격만 싼 숙소 예약했다가 고생한 거에 비하면 정말 천국 같은 곳이다.
숙소로 바로 들어가서 쉬고 싶었는데 체크인은 3시 부터란다. 9시도 안되서 도착한 부지런한 나. 하는 수없이 BRP도 찾으러 갈 겸 유스턴역으로 갔다. 내가 지정해놓은 우체국이 유스턴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 여기는 우체통밖에 없다고한다.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 와중에 엄마랑 은진이한테 전화하라는 심지의 성화에 전화했는데 다들 걱정하는게 느껴졌지만, 너무 피곤하고 BRP때문에 조금 신경질적으로 말한 것 같다. 쏘리 마이 패밀리.
킹쓔 영국워홀 Tips! BRP수령은 가능한 빨리
BRP (British Residence Permit) : 영국 거주 허가증. 영국 내 거주를 허가 받은 외국인이라면 입국 후 10일 내에 지정 우체국에서 해당 카드를 수령해야 신청한 비자과정이 완료된다. 수령기간이 지나가면 반송되므로 입국 후 바로 찾으러 갈 것
찾아보니 디씨젼레터에 지정 우체국이 써있다고 해서 급하게 PDF를 뒤져봤다. 다행히 레스터스퀘어 근처 우체국으로 지정되있었다. 나도 해놨던 기억이 났다. 숙소 와이파이를 활용해서 보니 도보 18분 거리였다. 비자발급 시 센터에서 받았던 보다폰 유심은 사이즈가 안맞아서 쓸 수 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구글 지도를 오프라인으로 켜서 우체국에 갔다.
뭐 물어볼까봐 긴장해서 갔는데 생각보다 금방 받았다. 여권을 주니 얼굴을 확인하고 바로 BRP 우편물을 건네주었다. 유효기간이 올해 12월까지길래 뭔가 잘못된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검색해보니 입국예상일 기준 3개월 정도 더 추가되서 나온다고 한다. 흐흐. BRP라니 이제 나도 영국살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거구만.
체크인까지 시간을 떼우기 위해 숙소 주변을 좀 돌아다녔다. 사실 유심을 신청하러 가야되는데 도저히 힘들어서 못 가겠더라. 세인트판크라스 교회에 들어가서 우리 가족들 친구들 다 건강히 있다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도 하고, 대영도서관 구경도 하고, 세인트판크라스역에 포트넘앤메이슨같은 상점들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5년 전 여행할 땐 몰랐는데, 영국은 생각보다 살기 좋은 나라였다. 그 땐 날씨도 너무 우중충하고 사람들도 좀 시크하게 느껴져서 되게 매력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느끼는 게 달랐다. 다들 친절하고 여유롭고 도시시설도 깨끗하고 잘 갖춰져있단 느낌을 받았다. 특별히 화려한 관광장소가 많아서 여행지로써 매력있는 곳은 아니지만, 살기 좋은 곳이랄까?
게하에 묵는 다른 애한테 들어보니 기차나 버스시간도 정확해서 연착이 없는게 참 좋다고 했다. 독일이나 다른 나라에선 기차 연착은 기본값이라며.
영국엔 가는 곳마다 문화시설이 잘 되있는 것 같다. 어딜가나 피아노가 있고 그걸 치는 사람들도 꽤 실력이 대단해서 놀랐다. 피아노를 좋아하는 내게 참 좋은 곳이다.
날씨도 덥지 않고 좋았다. 해가 쨍쨍한데 습하지 않아서 활동하는데 불쾌하지 않았다. 숙소에 에어컨이 없어서 조금 더웠다. 대신 뷰가 끝내줘서 좋았다.
같이 묵는 여행객들도 흥미로웠다. 남아프리카에서 영국에서 초등학교 수학교사로 일하고 있는 레이첼은 참 긍정적이고 밝았다. 숙소가 냉방시설이 잘 안되있어서 조금 덥지만 에어컨 대신 멋진 뷰를 선물받았다고 생각하자는 그녀. 독일에서 한 달 여행을 마치고 온 다른 한국 대학생은 그녀와 능청스럽게 영어로 대화를 했다. 나도 좀만 더 능숙하면 좋으련만. 비행기에서 만난 다른 한국인도 그렇고, 여행객들인데 일하러 온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한다.
그래도 뭐- 지금 나도 나쁘지 않다. 나도 알아듣는덴 지장없고 좀 디테일 한 의사소통은 힘들고 시간이 걸리지만 하긴 하니까. 곧 익숙해지겠지. 9시가 넘어서야 해가 졌다. 전부터 느낀건데 한국보다 꽤 긴 일몰시간이 맘에든다. 제법 나쁘지만은 않은 영국 워홀의 첫날이 저물어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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