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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4년 9월 여섯 번째 일기 (09.10~09.11)_ 런던 속의 한국을 느끼며

by 킹쓔 2024.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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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화 [워홀+43]_ 런던 한식당 면접


 어제 교정 유지장치 낀다고 저녘을 대충 먹은 관계로, 아침은 꽤나 거나하게 차려 먹었다. 양고기부터 시작해서 상해에서 즐겨먹던 새우라면에 김치, 파프리카, 케일까지.

제법 풍요로운 아침밥상

그리고 굿맨스필드로 갔다. 디온 소주도 사러가야하고, 오후에 GP에서 있을 자궁경부암 검진을 위해서 담당의를 만나러왔다. 시간과 공간의 구애없이 자유롭게 병원을 찾는 한국과 달리, 영국은 NHS(National Healthcare Service, 국민보건서비스)라는 시스템을 통해 전적으로 국가에 의해 운영된다. 일반적으로 집 근처 담당의가 지정되고,  무료, 무차별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원칙이다.

사실 난 워홀신청 때 보험료를 3백만원 가까이 냈기때문에, 무료라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몇 달 전 건강검진도 다 받아서 굳이 다시 검사할 것도 없지만, 이런 거라도 해야 내 피같은 돈 조금이라도 돌려받지.

 그러나 진료일은 다음 주 였다…어쩐지 왜 착각했지 나…뭐 그냥 미리왔다고 치자. 티엔티엔마켓에서 장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윤서에게 연락이 왔다. 이전에 말했던 한식당 알바 어떻냐고, 본인이 얘기했더니 사장님이 면접을 한 번 보고 싶어한단다.

디온이 사다달라던 진로 소주

 그렇게 갑자기 장 보다 말고 헐레벌떡 플랫으로 돌아가서 서빙용 CV를 다시 썼다. 혹시 몰라 한국어판 이력서도 준비하고, 이 모든 게 불과 몇 분 만에 이루어졌다.  

 한식당은 우리집에서 지하철로는 30분 정도, 걸어서는 1시간 정도 걸리는 파링턴 근처에 위치해있었다.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긴장한 탓에 1시간 정도 미리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면접을 봤다.

오랜만에 본 면접은 솔직히 망했다. 나는 인터뷰어 관점에서 어떤 것들이 좋은 점수를 따내는지 잘 알고 있다. 일 못구해서 당장 급한 애 치고, 일 자리에 대해 재고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 사장님 입장에선 좋은 인상을 받을 리 없다. 열정도 없고 덜 간절해 보이는 지원자가 과연 좋게 보일리 없다. 물론 그 분은 영국에서 오래 산 만큼, 아주 우아하게 돌려말했지만.

  솔직히 조금 고민이 됬던 건 사실이다. 여기까지 와서 한국인들이랑 일하는 게 맞나 싶었다. 워홀러들에게 시급 짜고 근무조건 열악하기로 소문난 한식당 일은 같은 시급이라도 더 복지가 좋고 영어를 쓰기 좋은 환경의 카페 잡이랑 더욱 비교되었다.

그치만 그놈의 카페잡 잡는 게 여간 쉽지 않다. 몇년 전에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던 그 자리들은 코로나와 브렉시트 이후로 조금 어려워졌다고 한다. 한달 전에 지원했던 카페 프렛타망제는 이제야 불합격 메일을 연신 날려댄다. 느려터진 영국 채용 시스템과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이뤄졌던 한국식 채용과정이 비교되면서, 그 면접이 더 아쉽게 느껴졌다. 게다가 사장님이 인스타그램 식당 홍보에 관심이 많아서 마케팅쪽 포트폴리오에도 활용하기도 좋았을텐데.

매일 다음 단계로 가기어렵다고 말하는 그들

 집으로 가는 길에 지난 번 지원했던 마케팅 잡이 떨어졌다고 메일이 왔다. 위치도 가깝고 재택과 통근이 결합된 근무 형태나 일도 마음에 들었던 자리라 아쉬웠다. 거기 하루 정도 준비해서 지원했는데. 속상한 마음에 세인즈버리에서 쇼핑을 잔뜩했다. 물론 그래봤자 세일하는 후라이팬  하나랑 1파운드 짜리 티백 두 개를 산 게 전부지만, 이렇게라도 소비를 함으로써 내 존재가 아직 건재함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오늘의 비계획적 소비 (충동소비 아님)

 

나 자신 힘내라고 차린 만찬

 저녘도 아주 거하게 차려먹었다. 고추장과 각종 양념을 넣어 순두부찌개를 먹고, 디저트는 복숭아와 마스카포네를 올린 크래커와 차를 타 먹었다. 고깟 면접 하나 망했다고 안 죽는다. 안되면 돌아가면 되지 뭘 그리 풀 죽어 있는 거냐고. 지금 이렇게 차이는 건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고 나를 달래면서.


09.11.수 [워홀+44]_ 런던 한인마트 투어


  아침에 플랫에서 약간의 소동이 있어서 예상보다 출발이 늦어졌다. 디온이 말한 소주도 사고, 니브가 말한 김밥 재료도 사러 한인마트로 왔다. 오세요랑 서울플라자가 붙어있는 소호에서 쇼핑을 했는데, 식료품은 오세요가, 과자같은 스낵은 서울 플라자가 더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서울플라자에서 조금 더 깔끔한 인상을 받았다.

영국에서 보면 더 반가운 빵순이/ 즐겨먹던 미역국수

 

Oseyo Soho · 73-75 Charing Cross Rd, London WC2H 0BF 영국

★★★★★ · 한국 식료품점

www.google.com

 

 

Seoul Plaza · 65-67 Charing Cross Rd, London WC2H 0NE 영국

★★★★☆ · 한국 식료품점

www.google.com

 영국에서 아시안이란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을 의미하는 듯 하다. 물론 가끔 중국인도 살짝 넣어주는 것 처럼 보이고. 요점은 한국의 자리는 그렇게 크지 않다는 거다.

귀여운 런던의 한식당들

그래도 더 한국적인 게 반갑다. 낯선 타지에서 만나는 반가운 한글 간판들. BTS도 오징어게임도 없던 시절, 맨 땅에서 삶을 일궈나가야만 했던 한인 이민자들의 삶은 어땠을까. 지금처럼 런던의 중심가인 소호에 입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노력했을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트라치아첼라맛

 지난 번에 마니랑 가보고 싶었던 젤라또 가게 벤치도 들렀다. 초콜렛도 팔길래 우리 애들 꺼 한 두 개 씩 사고. 레스터스퀘어 근처라 지난 번 왔던 EE샵도 들렀다. 다음 달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데 실물카드가 없어서 결국 다시 방문해야 할 것 같다.

알록달록한 런던풍경

 

바리바리 한국 보따리상

 어쨋든 대차게 서울플라자와 오세요까지 한인마트를 털어왔다. 술병이 가득한 가방을 보고 대학교 MT가서 남은 소주를 가방 가득 넣어오던 기억이 났다. 몇 십년 만에 알바 자리 알아보는 것도 그렇고, 여기선 종종 학생 때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든다. 그만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같달까?

저녘을 먹고 나서는 샤갈과 밤 공기를 맞으며 걸었다. 서남 아시아 출신 플메들이 그들의 모국어로 대화를 시작하면, 말 한마디 섞지 못하는 나는 자리를 맴돌다 조용히 내려온다. 눈치 빠른 녀석이 그걸 못 알아차렸을리 없다. 그런 날은 밤산책 어떠냐고 연락이 온다.

그러니까 잠깐 나갔다 오자는 제안은, 일종의 그 애가 <나를 챙겨주는 방식 중 하나>인 거다. 집에만 있는 내가 답답해할까봐, 말동무가 없어서 외로울까봐, 밤에 나가고싶어하는 날 위한 배려.

골목을 도는데 쿠말이 볼 멘소리를 했다. 왜 항상 늘 자기만 얘기하고 나는 왜 본인에 대해 말해주지 않냐고 투덜대면서. 오늘은 내 얘기를 듣고 싶다는 그 애를 위해 나는 가슴 속에 있던 이런 저런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가 좋긴했지만 우리 사이엔 늘 보이지 않는 선이 있는 것 같았는데, 속 얘기를 터놓고 나니 제법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얘는 곧 떠날건 데, 왜 점점 마음이 깊어지게 만드는 걸까? 한국을 떠나면서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조금 힘들었는데, 런던에서도 또 시작이네. 내일은 디온네 가기로 했는데, 벌써 파힐이랑 샤갈이 그리워질 것 같다. 이제는 제법 애정이 생긴 내 플메들을 떠나보내야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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