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7.수 [워홀+120]_ 하기 싫어도 일단 가 보자
한 거 없이 정신 없는 하루를 보냈다. 너무 일이 가기 싫어서 계속 누워있었는데, 막상 오니까 기분도 상쾌해지고 좋았다. 실수도 좀 덜하고. 그리고 이번 시기는 좀 호르몬의 영향을 덜 받는 것 같다. 덜 피곤하다. 그래도 아킬레스건은 조금씩 붓는다.
그나저나 벌써 영국에 온 지 4개월 차 가 다 되어가는 구만. 시간 참 빠르다 빨라.
11.28.목 [워홀+121]_ 남들이 보기엔 크지만 내가 알기론 작은 것
밥 먹으러 올라왔다 쇼룹을 만났는데, 그렇게 슬리퍼 바람으로 나갔다간 얼어 죽을 거라고 단단히 입고 나가란다. 이것 저것 잔소리해서 좀 싫은데. 이런 오지랖은 좀 고마웠다. 안 그래도 날씨가 궁금했던 참이었다. 창 밖으로 봤을 땐 굉장히 멀쩡해 보였거든.
목요일 오후인데도 꽤 사람이 있었다. 요즘 옷을 입을 때 마다 너무 태가 안 나는 것 같아서 빅씨 속옷을 사러갔다. 블프라서 엄청난 세일을 기대해봤지만, 생각보단 그냥 그랬다.
밤쉘을 살랬더니 언니가 더블D사이즈를 추천해줘서 당황스러었다. 아무리봐도 너무 사이즈가 큰데, 내가 그 새 살이 많이 쪘나. 아무리 쪄도 여긴 별로 안 컸는데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맞았다. 다른 직원이 다시 추천해준 B가 내 사이즈였다. 남들이 보기엔 커 보이는 건가.
내가 볼 땐 참 작게 보였는데,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작지 않은 것도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주방에서 만난 그 애와 얘기를 하며 또 한번 느꼈다. 작고 어린 소년 같은 그의 마음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철부지 어린애의 치기 어린 감정이나 특정 인종에 대한 판타지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의 마음은 참 깊었다. 작은 아이라고 마음마저 작은 게 아니구나.
11.29.금 [워홀+121]_블프가 뭔지
블랙 프라이데이가 뭐길래. 시내에는 사람이 넘쳐 흘렀다. 브레이크때 중고 거래가 있어서 잠깐 시내에 나왔는데, 전파가 안 터졌다. 덕분에 상대와 나는 서로 30분 이상 기다리다 돌아갔다. 휴.
풀근무 하는 날이라 나에겐 소중한 브레이크타임이었는데, 아까웠다.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자초지종을 모르던 상대도 화를 내려다가 같이 안타까워했다. 어이없게도 일터로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은 너무 잘 됬다.
일 끝나고는 라이언이 초대한 한국어 스피킹 모임에 갔다. 11시부터 10시까지 하루 종일 일하고, 또 일 끝나고 가서 딱 1시간만 놀고 왔다. 지난 번 모임과 달리 사람들이 호의적이었고 잘 챙겨줘서 재밌었다. 확실히 시내라 술값은 비쌌지만.
가게 내부를 찍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왔다. 지금 자기 찍은 거냐며. 나는 당연히 아니고 가게 내부를 찍은 거라고 휴대폰을 켜서 보여줬더니 납득하며 돌아갔다. 생각해보니 오해해서 미안하다며 사과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쪽이 잘못한거 잖아요! 사과해요 나한테- !
그리고 집에 가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물론 30분은 전부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였다. 이럴거면 그냥 거기서 더 앉아있다 올걸. 버스 정류장도 바로 앞이던데...
버스를 타서도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시내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아유... 다들 정말 쇼핑에 진심인거냐고 별로 싸지도 않던데. 그놈의 블프가 뭐길래.
그래도 가는 동안 예쁜 야경을 많이 봐서 좋았다. 런던에 와서 처음으로 밤 12시가 넘어까지 밖에 있었네. 거의 1시가 다 되서 집에 도착했다. 예전에 해가 진 10시에 테스코에 잠깐 가면서도 무서워했던 내가 생각난다. 낯선 곳이라 혹시 위험할까봐 가위를 손에 쥐고 집 까지 뛰어갔지. 깔깔.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밤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구만.
11.30.토 [워홀+122]_ 늘 그렇듯 쉬는 듯 쉬지않은
일어났는데 열 시가 다됬더라. 몸이 정말 찌뿌둥둥했는데 일단 먹을 게 있는듯 없어서 장을 보러갔다. 며칠 전 부터 아이스란드에 가서 장을 보려고 했는데, 너무 멀어서 귀찮았다. 대충 근처 테스코에 가서 치즈랑 계란, 휴지만 사서 오려고 갔다.
근데 또 막상 가서 보니 생각보다 살 게 좀 있어서 20파운드를 훌쩍 쓰고 왔다. 분명 서너개만 사려고 했는데 어느 새 가득 찬 장바구니의 마법. 저주라고 해야하나.
근데 웃긴게 야채 사러 간거였는데, 야채 빼고 다 사왔다. 어휴. 섬유질 걱정되니까 야채 대신 바나나푸딩(?)이나 먹어줬다. 바나나는 왜 한 다발로 사면 많고 한 개로 사면 적을까.
그리고 갑자기 크리스마스 뽐뿌가 왔다. 사실 얼마 전 부터 트리를 사고 싶었는데 그건 너무 부피도 가격도 부담되니까 그냥 창문에 뭘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나를 간파한 듯 테스코가 데코스티커를 딱 준비해놓은 거 였다. 리본 1파운드, 스티커 1파운드 총합 3파운드로 합의보고 예쁘게 꾸며봤다.
오늘로써 정말 딱 영국에 온 지 4개월 째다. 곧 12월, 내년이 다가오고 있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 되었다니. 조금은 빠른 듯 하다. 난 올 해 안에 취직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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