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1.일 [워홀+124]_ 바쁘다 바쁜 일요일
오늘은 우리 밤태봉 100좌 파티 있는 날. 멀리서나마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열심히 준비 해봤다. 사실 뭐 실질적인 준비는 미진이가 다 했지 뭐.
이거 한다고 가위 샀다가 급 뽐뿌와서 어젯밤에 머리 잘랐구요... 너무 대충 달라서 다듬어야 되는데 귀찮아서 그냥 대충 자르기만. 껄껄 셀프컷이라니 뭐 어떻게든 되겠죠. 머리야 금방자라니까요.
라이언이 세레나랑 셋이 놀자고 했는데, 세레나가 안 와서 라이언이랑만 놀았다. 어제 주짓수 수업에 갔던 그녀... 많이 힘들었나보구만.
라이언이랑 같이 다니면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다. 분명 지나갔던 곳이고 아는 곳인데 전에는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쇼디치 근처 식료품을 구경하는데 라이언이 잠깐 와보라고 하더니, <위대한 맛 great taste> 뱃지를 알려줬다. 미식가들이 식료품에 대해 평가하는 시스템인데, 별이 많을 수록 맛있는 제품이라고 한다. 그 말 듣고 별 세개 짜리 홀머스타드랑 땅콩버터 사왔잖아요.
그리고 홈 뮤지엄도 방문했다. 전에 누가 여기 추천해줬던 것 같은데. 이케아 쇼룸이 여기 따라 한 것 같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 느낀게, 라이언이 쿠키틴박스 보더니 저게 영국 집집마다 하나씩 있는 거란다. 우리나라 델몬트 유리병이 국민 물병으로 쓰였듯이, 저 쿠키통 안에 반짇고리 등을 넣어놓는 등 다용도로 쓰였다고 하니. 사람 사는 거 진짜 다 똑같구나.
라이언이 매일 같이 술마시는 한국인 친구가 있다고, 괜찮으면 같이 만나자길래 껴봤다. 그리고 완전 실망스러웠다. 정말 보기드문 무례함을 갖춘 사람이었다. 무뚝뚝한 건 뭐 성격이니 이해할 수 있겠는데, 만난지 두 시간도 안 된 사람한테 자존감 운운하며 평가질에 면박주는 건 굉장히 불쾌했다. 자리를 만들었던 라이언조차 앞으로 다시 보기 싫을 정도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거의 정신이 나갔다. 비틀대는 나를 보며 애들이 누가 몰래 약을 먹인 줄 알고 걱정해서 좀 웃겼다. 잠깐 누워있어야지 했는데 새벽 1시에 일어났다. 그냥 자려다 배가 고파서 뭘 주워먹는데 파딘이랑 마주쳤다.
소화시킬 겸 잠깐 얘기한다는게 갑자기 걔가 와인을 들고 내려왔다. 한 입만 먹어본다는게 두 세잔으로 늘어날 정도로 진짜 맛있었다. 이야기를 하는동안도 너무 재밌어서 시간가는 지 몰랐고, 새벽 네시가 되어서야 자리를 끝낼 수 있었다. 이러고 출근해야 한다니.
12.02.월 [워홀+125]_ 그래도 할 건 해야하니까
아침 해가 밝았는데, 너무 출근하기 싫었다. 사이다에 와인에, 나눠 마셨어도 몸이 찌뿌둥했다. 그래도 점심 근무만 하는 날이라 잘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탁기는 결국 안 고쳐졌다. 어차피 이불빨래도 해야겠다, 팁 받은거 털어서 코인세탁방에 갔다. 근데 아저씨가 곧 마감이라고 미온수 세탁밖에 안된단다. 그렇게 이미 버튼을 눌러버린...냉수 온수 다르게 하려고 일부러 나눠 넣은건데...
빨래가 다 되는 동안 벼르고 벼르던 아스다에 갔다. 브리타필터는 못 찾았고 리야 파라타는 찾았는데, 또 카드를 안 들고가서 그냥 제일 싼 걸로 샀다.
저녘을 먹는 데 사갈을 만났다. 집 계약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해보려고 했더니 본인도 이번 달 말에 계약이 끝난다고, 혹시 같이 이사할 의향이 있냐고 물어봤다. 파힐이 버밍엄으로 돌아가서 이제 혼자 살 게 될 것 같다며, 내가 일하는 곳 근처로 새 집을 알아볼 거라고 했다. 내 연락은 그렇게 씹어대놓고, 얘는 정말 필요에 의해서만 사람을 찾는구나.
문득 국제정치가 생각났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오직 실리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그런 관계.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남아있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웬수 진 사이도 아니니까. 나는 더 이상 그를 내 친구로 여기거나 신뢰하지 않는다. 인간적으로는 꽝이란 얘기지. 그치만 그의 사업적 탁월함과 영민함은 굉장히 실용적이다. 분명 그 특유의 넉살과 계산으로 손해보지 않는 조건을 만들어 낼거다. 걔가 진짜 나를 생각한 집을 알아봐 줄거라 믿진 않지만, 거기에 묻어갈 수 있다면, 나쁘지 않지.
방문 앞에는 꽃이 또 놓여있었다. 내가 사려다 못 산 꽃이었다. 요즘 잦은 술 자리 때문에 생각보다 돈을 많이 썼고, 그러다보니 꽃 하나 살 여유가 없었다. 정확히 내 취향인 작은 겹꽃들에 고마운 마음이 잔잔하게 퍼졌지만 곧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제 이유없는 호의라는 건 없는 걸 아니까. 가슴 한 켠이 헛헛한 탓에 살짝 흔들렸다.
그냥 이렇게 지내면 안되는 걸까. 굳이 내가 다시 서서 명확히 입장 정리를 또 할 필요가 있을까. 따지고 보면 별 일도 아닌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되나.
안 되지. 그건 그냥 내 마음만 편하자고 남의 마음 외면하는 거다. 그런 거 이용할 정도로 내가 그렇게 못 난 인간은 아니지 않나. 내일은 말 해야지. 돌리지 말고 명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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