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8.일 [워홀+131]_ 너무 오랜만의 회식
극P인 사장님이 한 달 전부터 예약하신 송년회 겸 회식. 그게 바로 오늘이랍니다. 회사사람들이랑 밥 먹고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 멀지 않은 장소고 배고픈 외노자라 쫄래 쫄래 가봤다.
제일 안 쪽 자리 사수하려고 일찍 왔는데, 사람들이 늦게 와서 사장님 옆 자리 당첨. 후후후... 인생이란 그런거죠 뭐... 열심히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사장님...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매일 지나가는 리버풀 스트릿인데, 이렇게 밤에 보니 또 새롭네. 밤 하늘의 수 많은 별들을 잡아다 뿌려 놓은 것처럼 반짝이는 전구들이 예쁘다. 이전 만큼 감정이 벅차오르진 않지만, 잔잔하니 또 좋네.
여기 살면서 지리적 이점을 톡톡히 보고 있다. 센트럴과 멀지 않으면서 적당히 거리가 있는, 그리하여 맘만 먹으면 시내 중심과 가까워지면서 또 소소한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우리 동네.
이제 다음 달이면 여기도 곧 안녕이구나.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센트럴 근처로 알아보긴 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처음 집을 구할 때보단 훨씬 집을 구하기 쉬워졌다.
경제적으로나 그 외 적으로 전보단 확실히 안정됐다. 어떤 집이 나한테 맞는지 잘 알고, 이젠 부동산 계약 시 필요한 서류들도 문제 없다. 주거에 필요한 사항들도 잘 파악하고 있고, 런던 지리도 꽤 알아서 대충 뭐가 어디에 있는 지 대강 아는 걸.은행 입출금내역을 위한 계좌도 열었고, 임대료 지불 능력을 증명할 만한 적당한 월급도 있다. 주거 기록을 증명해줄 부동산도 있으며, 이 집에서 비교적 바른 세입자로 생활했단 말씀.
그래도 자꾸만 한국행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전보다야 안정됐지만, 아직 목표했던 사무 정규직도 아니고. 한국처럼 풍족함을 즐길 정도로 삶의 질에 만족스러운 건 아니니까.
7번방에 새로 이사 온 플메가 프렛 음식을 한 보따리로 들고 왔다. 하이구 이게 다 얼마 짜리야. 투굿투고 시켰어도 이 정돈 안오겠다. 이제 여길 떠나면 이런 건 기대하기 힘들겠지. 술 먹을 사람 없으면 안 먹을 줄 알았는데, 사이다가 땡겨서 또 한 두 병 홀짝 거렸다. 근데 안 달아서 반 정도 먹다 말았다. 알딸딸하구만.
12.09.월 [워홀+132]_ 크리스마스에는 예거밤을
쇼룹이 파라타 먹길 래 옆에서 한 장 얻어먹었다. 어제 바에 가고 싶었는데 못 갔다고 투덜댔더니, 라이언이 시내 갈 거라고 시간 괜찮으면 보잔다. 가족들 크리스마스 선물 볼 거라고 센트럴로 나왔다는데, 인터넷이 잘 안터져서 엄청 엇갈렸다.
나중에 만나선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혼났다... 선생님인줄. 지도 볼 때 보내준 링크로 확인 안했냐고... 인터넷이 안 터졌다고 짜식아...나도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 그냥 전화할 걸.
쇼핑이 끝나고 한 잔 하러 가재서 워렌스트릿쪽으로 갔다. 이 자식은 웃긴 게 모임은 엄청 다니면서, 사람 많은 데는 기 빨려서 싫단다. 조용한 데 가서 한 잔 하자고 자꾸 골목으로 끌고가서 이러다 나 죽는 건 아닌가 살짝 걱정된 과몰입 N.
라이언은 선이 분명하다. 과한 호의를 베풀거나, 나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 점이 가끔 서운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제 이 편이 더 나은 것 같다. 과한 친절이나 온정을 베푸는 사람들은, 대게 다른 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다는 걸- 여러 차례 깨닫게 되었으니까. 깔끔하니 이게 더 나은 것 같다.
술값이 너무 아까운데, 라이언이랑 먹을 땐 그냥 영어공부 하는 셈 친다. 우리는 주짓수 스타의 사생활부터 성악설, 박찬욱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까지 많은 이야기를 했다.
뭐 전 여자친구 얘기도 듣고. 확실히 남자의 첫 사랑은 무덤까지 가는 것 같다. 길게 교제한 건 아니지만 그녀 때문에 호주행을 결심할 만큼 그에겐 꽤 나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나도 누군가의 인생에 저렇게 큰 영향을 끼친 적이 있을까.
내일 수업 갈 거 생각해서 내가 사겠다고 했는데, 결국 4잔을 마시면서 똑같이 사게 됐다. 네 파인트(2.3L, 1파인트=약 570ml)나 마셨는데 왜 항상 나만 취하는 거지.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시큰하게 취해서 들어왔고, 신발장 앞에서 쉬고 있는 나를 보고 파딘이 어디 아픈가 오해하기도 했다. 미안하다 얘들아... 누나가 세상 사는 게 힘들구나....
12.10.화 [워홀+133]_ 숙취를 안고 뷰잉 가기
아침에 일어났는데 진짜 피곤했다. 누군가 또 슬리퍼를 가져갔고, 장을 보고 돌아오니 또 가지런히 놓아 놨다. 이런 조그만 행위에도 심적으로 좀 지쳤다. 아- 생각해보니 어제 저녘을 안 먹고 술을 먹었구나. 아 외국애들은 왜 이렇게 안주 없이 술을 먹어제낄까. 하튼 간이 참 남달라.
요즘 라면이 너무 땡겨서 7시부터 세인즈버리를 갔다. 귤 포장박스가 너무 예뻐서 한 박스 사려다가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어제 오세요부터 갔어야 했어.
먹고 너무 피곤해서 또 잤다. 그리고 정말 나오기 싫었는데 저번에도 한 번 미룬 적 있는 일정이라 어쩔 수 없이 왔다. 분명 오늘 촬영이라고 해서 뷰잉 잡아놓은 건데, 어제 갑자기 수요일로 옮겨졌다. 하 진짜 스케줄 거지같구만. 정말 이 정도면 거의 5분 대기조야 진짜.
뷰잉은 두 군데를 돌았는데, 둘 다 나쁘진 않지만 썩 맘에 들지도 않았다. 첫 번째 뷰잉 한 곳은 부동산 아저씨가 터키사람이었는데, 성남에서 온 한국인 아내가 있으시단다. 그런고로 나 맘에 든다고 가격도 조금 깎아주신다고 해서 좀 기뻤다. 위치도 좋고 가격도 그 정도면 좋은데, 이제 방이 너무 조그매서 고민이 많이 됬다.
두 번째는 '헤라클래스'라는 이름을 가진 훈남 에이전트가 소개해줬다. 눈웃음이 귀여운 그. 그래도 사진처럼 우락부락한 몸은 아니었던듯? 깔깔. 가구도 새로 싹 해준다고 하고. 앞의 플랫이 중국, 일본 등 아시아계라면 여기는 모로코나 인터내셔널한 분위기라 맘에 들었는데. 4층이라 너무 층고가 높고, 빌 포함 이래 놓고 카운실택스가 300정도 따로 나온다고 해서 좀 그랬다. 다른 뷰잉은 시간이 안맞아서 못 갔다.
원래라면 오늘 라이언네 주짓수를 들으러 갈 예정이었는데, 해야 할 다른 일도 많고 너무 피곤해서 쉬기로 했다. 그래도 조금씩 자다 일어나다 하면서 밀린 잡일을 했다. 이렇게 제대로 못 쉬니까 피곤하지. 언제쯤 아무 일 없이 푹 쉴 수 있으려나.
주방에서 저녘을 차려 먹는데 파딘이랑 마주쳤다. 지난 번 라슈가 파딘이 내게 많이 서운한 것 같다고, 말도 없이 이사를 계획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이렇게 찬바람이 쌩하니 부는데 어떻게 그 얘기를 꺼내나. 그래도 어제 사고친 게 미안해서 소란스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다음 달이면 이사 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축하한단다.
그러니까 아침처럼 쌩까지 말고 당분간만이라도 잘 지내자고 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 말을 꺼낼 수 가 없었다. 머뭇거리고 있는 내게 달걀 좀 깨달라고 하길래 열심히 휘핑도 쳐줬다. 기분이 좀 풀린 건가.
지난 번 사갈이랑 이사 계획을 이야기 한 이후로-그리고 그걸 내가 말하지 않았음에도 모든 플랫 사람들이 알게 된 이후로- 난 남자 애 울리고 떠나버리는 나쁜 기집애가 된 기분이다. 생각을 너무 많이 했나.
어쨋든 이제 정말 술은 줄여야겠다.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숙취를 견디기엔 너무 피곤하구만...그리고 내일 일 정말 가기 싫다... 사장님은 좋은 분이고, 딱히 누가 뭐라 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 잔잔바리로 좀 그렇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스멀스멀 피어난다...그래서 너무 일이 가기 싫다. 하루 종일 쉬었는데도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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