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일
선물도 케이크도 필요없다고 쿨한척 하던 몽지는, 사실 아무도 생일을 축하해주지 않는다며 있는 청승 없는 청승 다 떠는 사람이었다. 애들은 10년전 내 모습2라고 한다. 뭐 그럴수도. 결혼기념일날 축구하러 가야된다는 철없는 신랑처럼 눈치없이 운동하러갔다 산에 가는 나. 그런 사람이 무슨 염치로 할말이 있겠어. 그래도 그 와중에 선물이랑 케이크 급히 준비하고 집 오니 진짜 퍼져죽겠더라.
요즘 체력이 떨어진건지 뭘해도 왜 이렇게 진빠지고 힘들까? 노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인지, 혹시 무리하고 있는 게 아닌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는 날들이다.
10.02.월
밀린 일 들 하기. 드디어 인스타 운동일기 끝. 어제 애기가 와서 놀아줬다. 일찍 온다고 다시왔는데 금방 갔다. 이제는 너무 달라져버린 우리. 내가 알던 애기가 아닌 것 같다. 여전히 애처롭고 사랑스럽지만.
10.03.화
기다려준다던 사람. 천천히 간다는 사람. 평지라고 산책이라고 했던 사람들 다 누구. 어디갔냐고요. 조금씩 쉬면서 갔으면 괜찮았을텐데, 다들 너무 서둘러 가기만 했다. 조급해진 나는 따라가느라 무릎 부서지는 줄. 시작부터 무릎이 지끈거렸다. 오픈매트들의 결과인가.
물론 스팟을 찾아야 완료되는 코스라 바쁜 줄은 알았지만. 휴. 평지를 예상했는데 제법 쉽지않았던 일정. 게다가 서울 돌아와서 빵 배달까지 다녀오니 정말 진 빠졌다. 늘 받기만해서 잘 몰랐는데, 멀리가서 뭘 사다준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 인 것 같다. 그래도 받는 사람이 뿌듯해하면 참 기분이 좋다. 오늘 하늘은 참 예쁘구만.
지붕 뚫린 차는 참 예쁘다. 움직이는 하늘을 더 잘 볼수 있어서. 인간은 중력에 매인 존재라 하늘을 더 갈망하고 그리워하는 것 같다. 원래 조상이 조류였나. 아니면 더 닿을 수 없는 곳에 대한 갈망인가.
+
10.04.수
어제 약도 먹고 7시간을 푹잤는데도, 통증이 계속된다. 집 오자마자 3시간을 내리잤다. 몸이 너무 안좋다. 두통도 오고 몸이 다 쑤신다. 이제 약도 못 먹는데 왜 이렇게 아픈걸까.
10.05.목
많이 잤더니 몸이 좀 낫다. 일도 더 잘한 느낌. 3키로 걸으려고 했는데 너무 추워서 못걷겠다. 퇴근 후 바로 집으로 귀가. 이 날씨에 반팔 입고 온 나 정말 대단하다.
10.06.금
새벽에 아이폰 15를 샀다. 카톡을 하다보니 사전예약이 진행 중이더라. 분홍색이 품절이라 노랑 샀는데, 사람들이 분홍 많이 사는 걸보니 노랑으로 잘 산 것 같다. 나도 이제 아이폰 유저가 되는건가. 20년 갤럭시 외길인생이었던 나. 더 나이먹기전에 애플코인에 탑승해본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열광하는지 한 번 써보겠어. 근데 뭘해도 애플쪽이 비싸긴 하네.
아빠가 귀를 뚫고 왔다. 너무 오랜만에 하는 소독이라 모르고 귀걸이를 뺏다가 다시 못 끼워서 난리가 났다.
멋쟁이 아빠를 둔다는 건 쉽지 않구만. 몇 분의 실갱이 끝에 아빠는 귀걸이를 들고 다시 가게로 갔다. 가게에 데려다주겠다는데 너무 성질을 내서 일단 기다렸다 다시 데리러 갔다.
차를 끌고 역으로 가서 아빠를 태워 오는데 아빠가 운전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조그맣던 애가 벌써 차를 운전한다고. 그 차를 자기가 타고 있다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세월 참 빠르다고 했다. 이제는 아빠가 말하는 그 기분을 좀 알 것 같았다.
10.07.토
글도 쓰다보면 는다.
헬스인들의 꿈 삼대오백인 ㅁ은 재능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노력이 있어야 잘할 수 있다고한다.
인스타 운동일기도 버거워하던 내가, 이젠 블로그 글 한 편까지 앉은 자리에서 뚝딱 써낸다. 하기 싫어도 꾸역꾸역 해낸 보람이 있다. 릴스도 하고 이 정도면 나름 콘텐츠 크리에이터 아닌가? 매일 주구장창 폰만 끌어안고 있던 시간이 헛되지 않게 쓰이고 있네. 단순 소비자에서 창작자로 변신. 물론 아무생각없이 휴대폰하는게 시간 때우기 참 좋긴하다.
치과로 가는 길은 항상 여행을 떠나는 길 같다. 꽤 먼 거리라 불편했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동부타고 입석포를 돌때면 아직도 마음이 선덕선덕하다. 성수대교를 지날 때 보이는 한강은 늘 예쁘다.
치과에서는 돈을 매우 잘 버는 것 같다. 정기검진 비용으로 3만원을 낸다. 치아관리가 잘 되고 있고 교정한 거에 이상없습니다. 이 말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초. 결코 싸지 않은 댓가. 뭐, 이상 있다고 치료비용 발생하는 건 더 슬프겠지만. 스케일링 고민하다 미래를 위해 했다.
어제 다른 브랜드 써보고 싶어서 필립스 샀는데, 치위생사 선생님이 필립스 소닉케어가 칫솔질에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오랄O는 원형으로 돌아가서 잘 안닦인다고. 과거의 나 아주 잘했어. 미래를 내다봤구만.
도삭면을 먹고 케이크를 하나 먹었다. 집에 가려다가 케이크가 맛있어서 다시 엄마꺼를 하나 더 샀다. 버스 정류장 출구를 헤매다가 꽃도 샀다. 강남역은 항상 헷갈린다. 그런데 횡단보도도 잘 없어서 걸핏하면 계단을 걸어야 한다. 강남에서 파주로 다녀왔다. 서울 최남단 동쪽에서 경기도 맨 끝 서북쪽까지. 정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남에 번쩍 북에 번쩍이다. 정말 이쯤되면 방랑벽 제대로 붙었지 뭐.
+
10.08.일
무릎 컨디션이 괜찮은 것 같아서 전 날 급하게 산행을 잡았다. 혼자 인근산 갈까하다가 또 안가본데 가보고 싶기도 해서. 간만에 산행이라 그런지 늦잠을 많이 자서 그런지 잠을 설쳤다. 2시간 정도 자다 깼는데 계속 잠이 안 오길래 그냥 서둘러 준비했다. 연인산 안좋은 평을 많이 들어서 그랬는지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기대하고 갔으면 좀 지루하고 힘들었을수도 있지만 별 감상없이 갔더니 제법 탈 만 했다.
망할 휴대폰. 등산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계속 휴대폰이 섰다. 보안정책때문에 카메라를 쓸 수 없다느니. 영상을 찍다가 중간에 서버리고, 버튼이 안눌리고 난리 부르스였다. 미리 폰 사놓길 잘했다. 오늘도 칭찬하는 과거의 나. 너는 정말 미래의 혜안을 갖고 있구나. 보조배터리만 들고가면 뭐하냐고... 그래도 다른 사람들 폰 받아서 그럭저럭 포스팅은 썼다.
오랜만에 여러사람들하고 등산하는 거 제법 재밌었다. 피곤해서 필터링 빼고 말한 것들 때문에 혹시 실수한게 있나 신경쓰였는데, 그런 생각은 접기로 했다. 뭐 항상 좋은 인상만 줄 수는 없는 거니까. 그리고 남의 말 하나하나에 생각하다보면... 피곤하다. 내일이 쉬는 날이라 더 놀고 싶긴 했는데, 어제의 여파인지 너무 피곤해서 집 오자마자 쓰러졌다. 넉다운.
+
10.09.월
체중이 1kg가 훅 빠져있었다. 생각해보니 어제 제대로 먹은 건 한 끼 밖에 없었다. 보상심리인지 오늘은 진짜 쉬면서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그런데 몽지가 라면 먹자고 해서 싫었다. 이런 날은 라면 말고 다른 걸 먹고 싶다고 투덜댔더니, 이런 날이 무슨 날이냐고 물어서 대답했다. 라면 먹기 싫은 날이라고.
그런데 너무 맛있었던 라면. 안 먹었으면 후회했을 뻔 했다. 역시 기몽쥐표 라면이 최고다. 하루 종일 꽈배기 노래 불러서 꽈배기도 먹었다. 오픈매트 가려고 했는데 아침먹고 자서 딱 12시에 일어났다. 아주 제대로 시간맞춰 잘 잤네. 밀린 블로그 포스팅도 하고, 물도 끓이고 청소도 했다. 오랜만에 닭도 재웠다. 나는 이걸 몇개나 먹을 것인가.
밤에 심지한테 연락이 왔다. 집 앞이니 내려오라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 내려와 집 앞이야! 군산 다녀온 그녀가 빵순이를 위해 가져온 선물 한 보따리. 그냥 다 팥빵인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영국빵집이랑 이성당이랑 비교해서 먹어보라는데, 너무 신난다. 내일 아침에 먹어야지.
10.10.화
이성당은 조금 기름기가 없고 씹히는 맛이 적었으며 팥이 더 달았다. 영국빵집은 표면부터 살짝 기름기가 돌고 팥 알갱이가 커서 씹히는 맛이 좋았다. 나도 영국빵집에 한 표. 오늘부터 식단하려고 했는데 지키기 힘들구만. 그래도 점심은 닭가슴살 챙겨먹었다.
예전에 하던 가닥이 있어서 대충봐도 그램 수가 나왔다. 밥이나 닭가슴이나 딱 봐도 100그램은 넘어가는게 눈에 보였지만, 뭐 그냥 일단 하자. 처음부터 너무 완벽하게 하려다보면 하기 힘들다. 조금씩이라도 하는 데 의의를 둬야지. 마치 완벽하게 대청소를 기약하며 방 청소를 미루다 보면 엉망이 되는 것 처럼.
몸이 무겁고 피곤했다. 연인산 여파로 움직일 때 마다 전신이 당긴다. 그래도 수업도 가고 챌린지도 했다. 통증은 살짝 있었지만 생각보다 몸은 가벼워졌다. 인증샷때문에 처음 측정해본 내 걷기 평속은 4중반이었다. 5까지 올려봐야지. 3km는 길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짧지도 않았다. 이렇게 거리 감각도 배워가고 또 한 걸음 성장하고 있군.
만나려면 천리 밖에 사는 사람도 찾아간다. 별로 마음이 없으면 옆 동네라도 보자는 얘기도 안 꺼내고. 좋아하는 사람만 만날 수는 없는데, 나는 너무 그러고 싶어만 한다. 사람을 대하는 내 극단적인 태도는 분명 잘못됬다. 내 감정에만 치우쳐서 사람을 대하면 안된다. 애정에 따라 관계에 차등을 둬서 누군가를 서운하게 하는 것도 좋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요즘 관계에 피로를 느낀다. 손톱만큼의 애정도 없는 사람한테 힘을 쏟기란, 에너지가 바닥이다. 당분간은 내키는 대로 살고 싶은 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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